지난 9월, 개인적으로 미국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미국 중부의 오하이오주에서 인디애나주를 거쳐 일리노이주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는 길이었습니다. 농업으로 유명한 지역답게 옥수수밭과 콩밭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 갑자기 대규모 공사 현장이 나타났습니다. 밭 한가운데 공항을 지을 리는 없고, 무슨 공사인지 궁금해 검색해 보니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Meta)가 AI 기반 서비스를 위해 건설 중인 1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였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청년들도 AI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게 될까?”, “AI 시대에 어떻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은 한국 청년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AI는 핵무기에 견줄 만한,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기술입니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권력 질서를 바꾸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제도적 대응도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AI 시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민은 넘쳐나는 반면, AI 기술을 어떻게 적절히 통제하고 사회적으로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는 AI만이 아닙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안보위기 등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주류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에 매몰돼 정작 중요한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합니다. 상대의 실패가 나의 성공이 되는 양당제의 구조 속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충분히 논의하고 다양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요? 만약 국회에 더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중요한 의제들을 놓고 보다 폭넓고 합리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공간도 그만큼 넓어지지 않았을까요.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근 청와대의 인사 논란을 지켜보며 많은 국민이 실망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용혜인 의원을 둘러싼 논란은 비례대표제 폐지 주장으로까지 이어졌고, 김승원 의원과 관련해서는 민주당 경기도당의 회계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우리 정당정치가 안고 있는 여러 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의 취지와 운영 방식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지난 9월 11일, 선거제도개혁연대도 함께하는 ‘내 표 그대로-선거제도 전면 개혁연대’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의회제도의 장단점이 논의됐습니다. 개방명부식 비례대표제라는 대안도 제시됐습니다. 제도의 구체적인 형태에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핵심은 분명합니다. 국민의 표심이 국회에 더욱 충실하게 반영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AI 시대의 위험을 통제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목소리가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선거제도개혁연대도 그 길을 열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 최지선 운영위원 |